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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갑일록의 니탕개의 난 당시 기록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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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갑일록의 니탕개 난 당시 기록 전문 // 계갑일록 목차  고전원문 > 대동야승 > 계갑일록 > 癸甲日錄 계갑일록(癸甲日錄) 癸甲日錄 秋淵禹性傳著 1 萬曆十一年癸未 (복사 완료) 2 萬曆十二年甲申 3 題禹景善日記後二首。西厓 // 癸甲日錄 秋淵禹性傳著 //1장  만력 11년 계미(萬曆十一年癸未) 〈선조 16년, 1583년〉 // 번역문 만력 11년 계미(萬曆十一年癸未) 〈선조 16년, 1583년〉 [DCI]ITKC_BT_1328A_0010_000_0010_2002_006_XML DCI복사 6월 1일 (신해). 아침에 비가 오고 늦게 개었으며, 《논어(論語)》를 읽다. 2일(임자). 아침에 가랑비가 내리고 신시(申時)에 큰비가 왔으며, 오후 늦게 개다. 순찰사(巡察使)의 보고에 의하면, “5월 20일에 경성(鏡城) 오촌보(吾村堡) 봉수대(烽燧臺)에서 봉수군 2명이 오랑캐에게 잡혀갔다.” 하다. 이성(利城) 이남은 약간의 비가 와서 해갈이 되었으나 이성 이북은 가뭄이 심하다는 말이 들린다. 《논어》를 읽다. 3일 (계축). 큰비가 오다. 심한 비가 해를 끼치므로 3공(三公)이 사표를 올렸으나 허락하지 않다. ○ 양사(兩司)에서 어제 이이(李珥)가 내조(內曹 궁중에 있는 병조 분관으로 내병조(內兵曹)라고도 한다)까지는 나와서 부르신 명령에 응하여 정원에 나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 논하다. ○ 명소(命召)하여 파직(罷職)하기를 청하다. 병조에서도 이이가 내조까지 나와서 임금의 소명(召命)을 받고도 병을 핑계삼아 출두하지 않은 데 대하여 함께 논핵을 받았다. 순찰사의 보고에 의하면, “호적(胡賊)이 수성리(輸城里)에 침입하여 민가에 방화하고, 또 서천보(舒川堡)의 봉수대에서는 연대군(煙臺軍)이 화살을 맞았다.” 하다. 《논어》를 읽다. 4일 (갑인). 아침에 비가 오고 늦게 개다. 순찰사가 배하인(陪下人)을 시켜 올린 보고장에 의하면, “5월 26일에는 명천(明川)ㆍ길주(吉州)ㆍ함흥(咸興) 등지에 비로소 비가 와서 큰물이 졌으나...